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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
2022.02.25 조회수 : 489
여러분 안녕, 배티입니다.



오늘 수업은 <20세기 최고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


그는 99년의 일생동안,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고,

지식을 탐구했으며, 인류를 사랑했던 상남자였습니다.




 

#1 사랑에 대한 갈망

오늘의 주인공은 버트런드 러셀입니다.


 

러셀은 1872년 5월 18일 영국 웨일즈에서 태어납니다.

러셀의 할아버지는 영국 수상을 두 번이나 지낸

존 러셀경이었을 정도로, 러셀 가문은 영국의 명문가였습니다.
 


 

러셀은 3남매 중 막내였는데, 기억도 안나는 2살 때,

어머니와 누나가 사망하고, 4살 때, 아버지마저 사망합니다.

그리고, 8살에는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사실 상, 러셀이 기억하는 유년기의 가족은

할머니와 형이었습니다.

 

러셀의 할머니는 보수적인 청교도였지만, 한편으로는

러셀에게 “군중을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 라는

성경 구절을 들려주던, 열려있는 신세대 할머니였습니다.



 

 

러셀은 학교에 가는 대신,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친구가 없었기에 고독한 유년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어린 시절, 내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혼자 정원에서 고독과 싸우는 시간이었다”라고 회고합니다.

 

고독은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갈망은 욕망으로 바뀌어,

14살에는 하녀를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99년의 생애 동안 4번을 결혼했으며,

다수의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러셀은 그의 자서전에서 <세가지 열정>이 자신을 지배했다고 말합니다.


(1) 사랑에 대한 갈망
(2) 지식에 대한 탐구
(3)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

 

“우리의 의식이 끝자락을 넘어, 차디찬 죽음의 심연에 다다를 때,

사랑은 우리를 심연에서 구출해주며, 누군가와 사랑으로 결합될 때,

성자들이 상상해온 천국의 축소판을 볼 수 있었다.”

 

평생 사랑을 갈망했던, 아니 사랑에 솔직했던 러셀,

그에게는 또 하나의 열정 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 지식에 대한 탐구

러셀이 11살이 되던해, 형이었던 프랭크 러셀

한권의 책을 건냅니다.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

 

많은 과학자들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유클리드 원론>

러셀의 삶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러셀은 훗날, 기하학을 만난 경험을 첫사랑처럼 짜릿했다고 말합니다.

<유클리드 원론>의 위대함은 단, 10개의 공리만 가지고

기하학을 평정했다는 점입니다.

 

이후, 수학에 푹 빠져버린 러셀은

“나도 언젠가, 나만의 공리 체계를 세울거야”

라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1890년 19살의 러셀은 영국 최고의 명문, 캠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그를 심사했던 교수는 미래의 동업자이자

위대한 수학자 화이트헤드 였습니다.

 


이후, 러셀은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영국의 계관시인 엘리엇

수많은 지성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학문을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중 러셀이 가장 관심있던 분야는 역시나 수학이었으며

20대 초반에는 집합론에서 유명한 <러셀의 패러독스> <수학의 원리>

가 발표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왕립학회 멤버가 됩니다.

 


서른살 즈음에는 스승 화이트헤드와 3년간 공동 저술한 야심작

<수학 원리> 3권을 집필합니다.

 

그리고, 야심차게 캠브리지 출판부에 가져갑니다.

 

“좋은 것 같긴한데,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눈물을 머금고, 사비를 보태 출판했는데

두 사람의 명성에 비하면,  대굴욕이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이 책은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

공리 체계를 세우게 되었으며

수학을 논리학으로 귀속시켰습니다.

 


이후, 수학이 조금 물렸는지 러셀의 연구는

철학과 역사, 정치, 사회학 쪽으로 발전했으며

<서양철학사> <행복의 정복> <정신의 분석> <외계의 지식>

<결혼과 성> <게으름에 대한 찬양>

4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잉크가 마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1950년, 러셀은 <권위와 개인>이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세계는 문이과 통합형 지식인, 러셀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3 인류 고통에 대한 연민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의 회고록 <폭풍의 한가운데>

같은 시대를 살았던, 러셀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러셀은 일생동안 일차, 이차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전쟁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일차대전 당시, 러셀은 <미친 전쟁>이라고 비난했고

징병을 반대하다가 6개월간 투옥됩니다.

심지어, 독일 잠수함에 암호를 흘릴 수 있는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해변가 접근 금지령>을 받기도 합니다.

 

 


이차대전 당시, 러셀은 사회주의자였지만,

나치의 반인륜적인 행동은 S레기 라고 비판하며 연합군을 지지합니다.

연합군과 자유 세력은 러셀을 정치 수단으로 활용했고

방송에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한마디는 핵정치인 이상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러셀은 권력에 탑승하지 않는 진실한 영혼이었습니다.

자유 진영의 핵무장에 반대하다가 1962년

아마 유명인 중 거의 최고령인 91세에 또 다시 투옥됩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집필활동을 하다가

1970년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러셀의 관심사는 부와 명예도, 정치적인 진영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에 대한 연민 !

 


러셀은 VIP 출신이었지만, 약자를 위해 살았고

그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았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본이었습니다.

(사랑에 너무 솔직했던 것을 봐드린다면요)

 

 

 

스톡홀롬 연설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된 노벨은

겨울왕국 스웨덴의 스톡홀롬에 도착합니다.

그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큰 도시마다, 아주 후진 카누를 타고 떨어질 수 있는

인공폭포와 기계 상어가 우글대는 수영장이 있었으면 합니다.

누구든 전쟁을 주장하면, 하루에 두 시간씩 그 영리한

짐승들과 함께하는 형벌에 처해야 합니다.”

 

이후, 이 연설 전문은 레전드가 되어,

축음기 음반으로 퍼져나갑니다.






지금까지 배티였습니다.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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